Tuesday, April 1, 2014

하용조 목사의 러브 소나타 (4) - 생명의 삶 2014.4월호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7-8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듣고 서신을 띄웁니다. "싸우는 것을 멈추라. 하나님의 말씀, 사랑으로 돌아오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분열이 있는 곳에, 파벌이 있는 곳에, 음행이 있는 곳에, 부도덕한 곳에, 소송이 있는 곳에, 우상 숭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라고 호소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4~8절에 언급한 사랑의 열다섯 가지 속성은 다섯 가지씩 세 묶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번째에 속하는 다섯 가지 속성(7~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습니다"
     남의 허물을 자꾸 들추고 약점과 단점을 찾아내고 아픈 부분을 파헤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과 실수와 죄를 덮어 줍니다.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괸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이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을 보호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요 8:7).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돌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이 여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한 여인을 보호하시고, 격려하시고,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덮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에게는 아버지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은 죄와 상관없이 용서, 환영, 보호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묻지 않고 그 냄새나는 아들을 껴안고 반지를 끼워 주고 음식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덮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배우자의 실수, 자녀의 거짓말이 눈에 보입니까? 일단 덮어 주십시오. 사랑으로 덮으면 치료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악하고 형편없던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던 사람이 '덮어 주는 사랑'을 경험하면 마음이 녹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합니다. 사랑은 믿음을 심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죄짓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도록 지지해 주십니다. 다혈질인 베드로는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끝까지 믿어 주신 덕분에 그는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어 주는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땅이 말랐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비둘기가 잎사귀 하나를 물고 왔습니다. 이 잎사귀는 희망을 뜻합니다. 홍수가 지나갔고 땅이 말라 이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희망을 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희망의 씨앗, 희망의 잎사귀입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취업에 계속 실패해도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해 보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희망을 주십시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도,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 사람도 노아의 잎사귀와 같은 희망을 주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중도에 하차하고 싶은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셨다면 우리 구원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 아닙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46). "내가 목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은 이렇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모든 고통을 견뎌 내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랑은 금보다 강하고 귀합니다. 집도, 자동차도, 직장도 언젠가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 4:10~11).

     여러분에게 세 가지 실습해 보도록 권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3장 4~8절까지 '사랑'이란 말 대신 '나(또는 자기 이름)'를 넣어 읽어 보십시오. 동의가 되십니까? 이번에는 '사랑'이란 말 대신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나(또는 자기 이름)'라는 말을 넣고 읽을 때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입술만 움직일 뿐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면 "맞아, 이분이 예수님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 대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이 사랑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온전히 드러나 이 사랑이 가능해지도록 내 고집과 혈기와 연약함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하용조 목사의 러브 소나타 (4) - 사랑,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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