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30, 2014

짧은 인생 나눔 #726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호흡이나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순환을 유지시켜주는 응급처치입니다. 병원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죠. 그렇다면 쑈피알은 무엇인지 아시나요?

어느 의사 선생님께서 쓰신 글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큰 불효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정된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가족들이 오실 때 까지 사망선고를 미루고 있기를 의료진에게 바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올 때까지 사망선고를 미루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을 씨피알이 아닌 쑈피알이라고 의사들은 부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죽음을 본 것은 바로 쑈피알 직후 돌아가신 할아버지셨습니다. 숨이 멎어 가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미국에서 의학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모두가 일반대학교를 우선 졸업을 해야 합니다. 결국 두 번의 학교 입학을 해야 하기에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필요로 합니다. 공학을 전공하면서 거의 2년치 되는 분량의 필수 과목들을 추가로 들었고 봉사시간을 채우고 병원에서의 경험도 쌓고, 필요하다는 운동 팀 경험도 채워 넣고 심지어 돈을 벌어봤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 위에 미국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인 MCAT도 공부해야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추천서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곤 23군데의 학교에 원서를 넣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졸업을 하게 되었기에 미국에 남아있을 명분도 없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군대의 압박과 미래의 불확실에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그 다음 날 어머니께서 저를 병원에 데려가셨고 그곳에는 바로 저의 친할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셨습니다. 아프시다는 소식은 전화로 듣긴 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셨습니다. 일어서시지도 못하시고 밥은 IV로, 소변과 대변은 기저귀로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정신이 깨어 계실 때에는 저를 보시고 눈 한번 깜빡이시고 미소를 지으시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는 할아버지께 약속했습니다. 꼭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유학생이니 뭐 좀 되는 줄 알고 있던 저는 안일하게 한국에서 의전원을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6월에 연대 신촌에 수시를 넣어 미트 공부도 하지 않고 괜히 뽑힐 것 같다는 생각으로 원서를 준비했지만 7월이 되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 남은 시간동안 발버둥 치며 의전원 입학시험인 MEET 공부를 했고 그랬기에 시험은 아주 깔끔하게 망했고 정시는 포기한 마음에 넣어 역시나 떨어졌습니다.

늘 최선을 아니었어도 차선의 길로 갈 수 있었던 제 삶이었기에 이러한 실패는 저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MEET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11월 말 즈음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 드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에 저는 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살아온 제 삶에 크나큰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까? 할아버지 앞에 나의 노력이 너무나 부족했던 것 같아 참으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 저는 의대 편입을 하였고 학교를 다닌 지 일 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리 흔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저의 노력보단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었습니다. 인생 가운데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태반이고 그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 학교를 게을리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이 과정 중에 내 삶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가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각자 계신 그 자리, 그 곳은 여러분의 노력이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 자리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매일 같이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의대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닌 여러분이 그 곳에 계신 것은 여러분께서 갖고 계신 특별한 재능과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들이 더 많거늘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더욱 열심히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한 걸음 더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삶을 사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두 번 째는 바로 여러분들 역시 하나님을 만났으면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얼 하는지 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우선순위는 하나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을 그에 합한 열심을,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에 대한 관심을 갖으셨으면 합니다. 

Sunday, April 27, 2014

An Excerpt from "A Philosophical Journey: The Search for Meaning in Human Existence upon the Death of God"

And as long as we hold on to this premise, we no longer have absolute nor objective meaning in our lives. There is only subjective meaning, which is bound to change every moment and leaves us insecure. We are like sailors in the dark stormy sea with no land ahead of us, and there never will be land. A compass is useless for even the Northern stars have been covered by clouds. And yet we depend on subjective meaning, which, at its best, is an illusion. It is a mental construct that keeps our frail existence alive for a few more breaths at the face of the grandiose cold universe. We are paradox. 
"A Philosophical Journey: 
The Search for Meaning in Human Existence upon the Death of God" by Aut Kean

Friday, April 25, 2014

Who We Are

"You can wipe out an entire generation, you can burn their homes to the ground, and somehow they’ll still find their way back. But if you destroy their history, you destroy their achievements, then it’s as if they never existed. That’s what Hitler wants, and that’s exactly what we’re fighting for." The Monuments Men

It's amazing how the devil tries to do the same to our lives. Upon reading the Bible over and over again, we are reminded of the rich history of God's reign in the lives of those that believed in Him. Yet, more and more, people are less accustomed to reading and spending time with the Bible, with Christ. As we slowly lose our history, our identity in Christ, we no longer become an existence. 

Wednesday, April 23, 2014

Post-relationship Thoughts

There is always a lot said about relationships, codes of behaviors, comments on what is acceptable and what is not. Memories also have a big part of it all, both for the good and the bad. Relationships were always very difficult to me. I now attribute my lack of courage and desire for perfection to be the source. In any case, I always wondered how some people could simply start dating someone else after a break-up and live as if the other was completely forgotten. I am not talking about situations where the relationship was cut abrupt by one party, leaving unresolved emotions or due lack of closure, but in cases where the break-up was completely healthy and friendly. Even so, I always have lingering memories that overlap when seeing someone else. I will not say they affect me negatively, but they are factors in my decision-making. To be honest, this is not the case for all the people that I have met and said farewell. I guess some get left behind, while some may not. All I know is that I wish to find someone to build a deeper relationship, allowing my memories to accumulate further and on. 

Sunday, April 20, 2014

Walking Tenderly

복은 따라 오는 것이지
따라 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힘들어도
내가 피곤해도
나를 버리는, 그런
더 기도하는
남을 위해 사는

Saturday, April 19, 2014

Friday, April 18, 2014

Excerpt from Daily Missions

This is a little blurb I had written in some other document. This part became obsolete, but I did not simply want it to be erased, for memories sake of course. 

요즘 들어 연애와 관계에 대해 더욱 생각할 일이 생겼습니다. 정말 이 사람인지, 이번에는 더 오래, 깊이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사실 지금 시점까지 오게 된 과정 중에 기도를 너무나도 안한 것 같아서 고민이 더욱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주여, 이 사람입니까? 이 일입니까? 오늘은 어디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Thursday, April 17, 2014

A Toast to My Friend (in August)

A toast!

As young kids, the four of us friends would get together at his house. 
We would play video games all night long, without a single worry in our minds. 

I remember one specific day, we all agreed that he would be the last to get married. 

Well, here is today, him being the first!

One thing I truly admire the most of this couple is that they prayed, 
in all matters of their lives, especially in the meeting of the two. 
I believe this marriage is one truly blessed by God, so I pray for the very best.

Wednesday, April 16, 2014

Two Words

Fully dysfunctional
Completely dependent
Despicably hypocritical
Utter chaos
Severe depression
Losing hope

Finding grace
Jesus Christ
Remember me
Kingdom come
Live, love
Believe, act
March forward

Tuesday, April 15, 2014

Making Amends

I am here to say I am sorry.
On the other hand, I forgive you. I truly do.
Who am I to even forgive, anyways?
I, too, have been forgiven.
So, I ask for your forgiveness too.
I sincerely ask that you do the same for me.
I wish the very best for you.
I pray that you become one of the most prized in the eyes of the LORD.

Monday, April 14, 2014

Pencil Work

Let no ambition overtake my heart.
Let no desire consume me.
Let me doubt myself evermore.
Let me trust God forevermore. 

Sunday, April 13, 2014

Happy Anniversary Mom and Dad

Today was the 29th wedding anniversary of my parents. I overheard how one of my friends reserved a night in a fancy hotel for her parent's anniversary. Naturally, I wanted to do something similar, but my parents seemed too busy. I did what I could and bought some flowers with delicious cheesecake (blueberry and strawberry cheesecake, mind you). With a bit of dish washing and card writing, I can confidently say that my parents appreciated it...hopefully. As shy as I am, I went into my room to go about my business, but I could hear my parents talk for hours on. Little things, big things, of the world, of Christ. I knew they loved each other, though nothing was absolutely perfect, and I longed to find someone that I can share such love with as well. Somebody that I wish to sacrifice for. 

Thursday, April 10, 2014

의대 생각 #642

1

의학의 불을 태우는 땔깜은 두가지다.
족보가 타든지, 내가 타든지

2

의대는 신기하다. 
새싹으로 들어와서, 
걸어다니는 먼지가 되어, 
눈 떠보니 노예요, 
어느새 의인 혹은 악인이 되어
삶을 마감하게 된다.

3

시험을 보기 위해 사는 삶을 살다가
시험이 막상 끝나고 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는데 하루 정도 걸리는 것 같다.

4

의대와서 어제 처음으로 A를 받았다.
A-이긴 해도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하다.

5

장기려 선생님께서는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댈 적마다 
오진 않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한다.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기도할 것만 같다.

Wednesday, April 9, 2014

Where Art Thou, Peter?

"But an evil spirit from the Lord came on Saul as he was sitting in his house with his spear in his hand. While David was playing the lyre, Saul tried to pin him to the wall with his spear, but David eluded him as Saul drove the spear into the wall. That night David made good his escape." 1 Samuel 19:9-10

Often times I have seen people struggle with leaving or throwing away. Detachment is definitely a tough assignment for weak willed lazy souls. 

On the other side is the difficulty in responsibility, the need to stick around through it all.

David lived in constant death threats, yet he stayed, as he was still needed there. Our immediate response to threat would be protection and flight. God's love, his calling, however, should transcend it all. 

I feel so detached to it all. I have lost grip of my identity. I have rested well, or maybe not, but I certainly am willing to come back to the mission grounds. Let's just see how long this conviction lasts. 

Friday, April 4, 2014

Quote from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요나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의 언약적 우정을 지켰다. 그 우정은 다윗에게 두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기여했으나, 요나단은 그 이후로 다시는 다윗을 볼 수 없었다. 요나단은 자신이 지킨 우정에 대한 감정적인 보상은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요나단은 다윗에 대항하는 무자비한 정서가 굳어져 있던 환경과 조건들 가운데서 그 언약을 지켰다. 요나단은 죽을 때까지 사울의 조정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자기 아버지와 함께 불레셋의 침입을 저지하는 전쟁을 치렀고, 아마도 다윗을 추적하는 자기 아버지와 동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들이 그 언약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언약을 그런 상황과 조건들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졌다. "사울의 궁"에서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언약적 우정이 서로의 맹세로 맺어진 친밀함으로 인하여 적대적인 결혼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 직장 안에서, 문화적인 조건 가운데서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고 그 우정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우정 속에 담긴 사람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그 상황에 개입되어 있는 조건들 때문이 아니라 우정을 약속한 언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 유진 피터슨

Wednesday, April 2, 2014

Notepad: Quick Intro

Ayo, seven, six, eighty eight
What a date to be great
Name's GrasDeo, a cancer, not a leo
Holla with the collar, up, sayin' what's up

Tuesday, April 1, 2014

하용조 목사의 러브 소나타 (4) - 생명의 삶 2014.4월호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7-8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듣고 서신을 띄웁니다. "싸우는 것을 멈추라. 하나님의 말씀, 사랑으로 돌아오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분열이 있는 곳에, 파벌이 있는 곳에, 음행이 있는 곳에, 부도덕한 곳에, 소송이 있는 곳에, 우상 숭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라고 호소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4~8절에 언급한 사랑의 열다섯 가지 속성은 다섯 가지씩 세 묶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번째에 속하는 다섯 가지 속성(7~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습니다"
     남의 허물을 자꾸 들추고 약점과 단점을 찾아내고 아픈 부분을 파헤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과 실수와 죄를 덮어 줍니다.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괸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이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을 보호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요 8:7).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돌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이 여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한 여인을 보호하시고, 격려하시고,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덮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에게는 아버지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은 죄와 상관없이 용서, 환영, 보호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묻지 않고 그 냄새나는 아들을 껴안고 반지를 끼워 주고 음식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덮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배우자의 실수, 자녀의 거짓말이 눈에 보입니까? 일단 덮어 주십시오. 사랑으로 덮으면 치료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악하고 형편없던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던 사람이 '덮어 주는 사랑'을 경험하면 마음이 녹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합니다. 사랑은 믿음을 심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믿어 주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죄짓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도록 지지해 주십니다. 다혈질인 베드로는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끝까지 믿어 주신 덕분에 그는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어 주는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노아가 홍수 이후에 땅이 말랐는지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비둘기가 잎사귀 하나를 물고 왔습니다. 이 잎사귀는 희망을 뜻합니다. 홍수가 지나갔고 땅이 말라 이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희망을 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희망의 씨앗, 희망의 잎사귀입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취업에 계속 실패해도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해 보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희망을 주십시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도,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 사람도 노아의 잎사귀와 같은 희망을 주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중도에 하차하고 싶은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셨다면 우리 구원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 아닙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46). "내가 목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은 이렇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모든 고통을 견뎌 내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랑은 금보다 강하고 귀합니다. 집도, 자동차도, 직장도 언젠가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 4:10~11).

     여러분에게 세 가지 실습해 보도록 권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13장 4~8절까지 '사랑'이란 말 대신 '나(또는 자기 이름)'를 넣어 읽어 보십시오. 동의가 되십니까? 이번에는 '사랑'이란 말 대신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나(또는 자기 이름)'라는 말을 넣고 읽을 때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입술만 움직일 뿐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면 "맞아, 이분이 예수님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 대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이 사랑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온전히 드러나 이 사랑이 가능해지도록 내 고집과 혈기와 연약함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하용조 목사의 러브 소나타 (4) - 사랑,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