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1, 2015

Farewell: Year 3

Year 3
1 – 그 때 그렇게 널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그 멀리서도 당황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까? 각자 서로 다른 사람 옆에 앉아서 같은 곳에, 그 넓고 많은 장소와 무한한 시간 속임에도 불과하고 마주친다는 건.

내가 좀 당황하긴 했나 봐. 여자친구가 왜 그러는지 물어보더라. 이미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던 친구라 깊이 설명할 것도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은 들더라. 사실 당황한 내 모습도 이해가 가지 않았어.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 전에 명확한 맺음을 하라는 뜻이라 여기고 감사한 마음에 연락을 했었지.

집에 도착해서 전화 넘어 들리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인연을 이제는 내 손으로, 내 입으로 틀어막는 게 싫었나 봐. 그 때 혹시 실없는 소리들을 지껄였다면 미안해. 마침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난 뒤였는데 괜히 방이 더 낯설었고 창문 넘어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씁쓸한 그런 광경이었어. 멍하니 이를 닦고 따스한 이불 속에 내 자신을 덮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3 – 분명히 잘 지내라고 얘기하고 좋은 끝맺음을 지은 줄 알았는데 다시 또 이상한 곳에서 너의 생각이 나더라. 영등포는 네가 사는 곳도 아닌데 지날 때 마다 왜 생각나는 걸까? 신월동이 그 근처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나? 여자친구를 보러 오고 가는 길에 항상 영등포가 크게 쓰인 표지판을 보면 그렇게 연락하고 싶더라. 원래 남자들은 이런 건지 친한 몇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렇다한 시원한 답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5 –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나마 우연히 만나기라도 할 때마다 점점 쌀쌀맞게만 느껴지는 너의 태도에 자연스레 연락처를 모두 지우기로 했었어. 헤어지고 난 뒤에 친구로 지내는 건 정말 불가능 한 걸까 잠시 고민을 하고 나서 말이야. 그래도 참 학교가 좁다는 걸 다시 느꼈어.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누구인지 참 궁금하더라. 어떤 사람을 만난 걸까. 정말 좋은 사람이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훨씬 더 잘나가는 사람이길, 너무나도 유치할 만큼, 바랬던 것 같다.

7/1 – 작년에 잠시 너를 만나고 헤어졌을 때, 그 때 왜 그렇게 금방 관계를 관뒀는지 물어본다면 시원하게 대답은 못 해줄 거야. 너무 어려서 그랬다고 말하기에는 내 나이가 어리지 않았고 타이밍이 아니었다고 말하기에는 내 스스로가 타이밍 따위 믿지 않고 널 사실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도 생각이 나고 있는걸. 마음에 부담이었나? 그냥 별 생각이 없었나? 나 스스로도 정말 궁금했어.

네가 나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는 걸 보면 왜 그렇게 마음이 상했는지.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날 피하는 것 같고 마주치면 못 본 척 하려는 게 가끔은 화도 나곤 했어.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야. 그런데 여자친구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꿈에 신기하게 너는 등장하기도 하더라. 다행이 한두 번뿐이었어. 그래서 나 스스로가 너무 쓰레기 같진 않더라. 내일이면 이런 생각 하나 없이, 아예 아무 생각 없을 것도 알지만 그냥 오늘 좀 센치한 밤이려나 싶네.

오늘이 내 생일이어서 더 그런가 보다 했어. 마지막 몇 분이 지날 때 까지 너에게 축하 받고 싶다는 생각은 버려지지 않더라. 여자친구가 오늘 저녁은 학교에서 가장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한테 연락하라고 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너였어. 다행히 다음 생각난 게 친한 형이어서 저녁 맛있게 먹고 왔지 뭐.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생각해보면 남자친구와 잘 지내며 학교를 다니고 있겠거니 싶었어. 하지만 정말 궁금한 건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야. 네가 마지막으로 추천해준 몇 개의 노래들을 들으면 실소가 나오곤 해. 노래 가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썼네.

드라마나 영화처럼 서로가 혼자일 때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려나? 어차피 읽을 사람 하나 없는 글, 혹 훗날 내가 나이 들어서 책을 내게 된다면 언젠간 인용되는 부분이겠으니 할 말 못할 말 다 쓰고 잘게.

7/2 – 너는 그 때 울긴 했었니? 슬펐하긴 했니? 헤어지고 나서의 여자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물어보기도 한 걸 넌 알 수 있으려나? 애꿎은 그 농구장은 너를 마주치게 되는 장소 같기만 해서 가끔은 피하기도 가끔은 혹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번 더 슛을 쏘고 돌아가곤 했었어.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쓰고 나니 마음 정리가 많이 되더라. 친구가 나에게 말해줬어. 네가 인사하는 걸 불편해 하는 건 아직 마음이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 말이 맞는 건지 확인할 마음은 이제 없어. 정말 잘 지내길 바라고 있어. 끝에 가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런 흔한 영화들의 오픈 엔딩처럼 그렇게.

8 - 나름 결론을 내렸어. 너와 나는 학교에서 만든 추억들이 은근 많더라. 그래서인지 너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 같아. 지금 만나는 사람과는 학교에서의 추억이 거의 없어서 더 그런가 싶다.

너와 시내를 같이 걷던 시간, 수줍게 약을 건네주던 시간, 예배에 함께 집중하던 시간, 동산에서 이야기하던 시간,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시간, 열람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시간, 근처에서 급하게 밥 먹고 오던 시간, 편의점에 놀러가던 시간, 옥상에서 만나던 시간, 빈 강의실에서 입맞춤하던 시간.

하지만 너는 그런 추억들을 이젠 다른 사람과 쌓아 가겠지. 나는 마음 정리가 되는데 일 년 정도가 걸리나보다. 이제는 아련한 마음도 없네. 고마웠어. 추한 모습 보인 적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할게.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길 바란다는 축복과 함께 너와의 관계도, 이 글도 이만 마칠까 해.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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