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30, 2018

숨어 있던 나에게

기억의 단편, 그 조각이 떨어져 나온다. 

굳게 닫힌 방문에 문을 단순히 잠그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서랍장까지 낑낑대며 옮겨 놓았다. 마음이 너무나도 속상하여,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었다. 그 연약함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 넓지도 않은 방에서 책상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여전히 흐르는 눈물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애써 크레파스 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출할 때 챙겨갈 보물 1호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무엇 때문에 혼났는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남들이 보면 부족함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린아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지 않겠나. 그저 부모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확고해져서 나갈 준비를 할 뿐이었다.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추울지, 또 배는 얼마나 고플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막아 놓기 위해 옮겼던 그 서랍장과 문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짜증 섞인 말 한마디가 귀에 들려왔다. 끝난 줄 알았던 그 두려움이 다시금 엄습하여 벌벌 떨었다. 

그런 고통의 이유를 찾을 때면 결국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부모의 문제이거나 나의 문제이거나. 하지만 어린아이로서는 부모의 문제라고 여기고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결국 그 어떤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포감에 결국 나의 문제라고 여기고 그걸 마음에 품은 채 살아온 것이 느껴진다. 

하는 그 모든 일 앞에 죄책감이 따라왔다. 나의 추악한 면을 보게 될 때 실망하진 않을까 두려워했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나의 자존감은 그렇게 내가 기억도 잘 나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처참히 파괴된 채 시간이 흘러왔던 것이다.  

그 부족함을 하나님으로 채울 순 없을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율법적으로 살아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신앙의 바탕은 나의 행위가 아니지 않던가. 율법 속에 헤어 나오지 못해 내가 만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준 것은 명백히 기억한다. 그 어느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실망하고 떠날까 먼저 밀어냈다. 

하지만 내가 만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나에게 많은 위로를 부어주셨다. '굿 윌 헌팅'의 한 장면처럼 내가 잘못하지 않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다독여주셨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 구원의 감격을 마음에 품고 지내지만 여전히 상처의 잔재는 남아있다. 또 나의 불완벽함에서부터 오는 죄성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나에 대한 자존감도 건강하게 세워가고 있었고 그 어느 누구보다 사랑받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마음이 혹시 너에게는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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