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8, 2018

눈빛 가운데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어느 신혼부부처럼 설레는 마음과 걱정 어린 마음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하는 중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검사 결과 상 알파페토프로테인 수치가 높다고 하여 추가적인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어떠한 결함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혹시나 검사가 오류가 있는 건 아닐지, 단순한 착각은 아닐지 마음을 졸이며 검사를 계속해서 받았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명확해졌습니다. 아이는 어떠한 유전병으로 정상적인 발달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모자보건법상 유전성 질환으로 태아에게 미치는 위험성이 높으면 임신 24주일 이내로 임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라며 그녀와 가족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낙태를 하라니, 의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괜히 법으로 낙태가 허용된 게 아니라고, 엄청난 고생이라고. 그러나 그 아이는 그녀의 아기였습니다. 다른 그 누구도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그녀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였습니다. 그녀가 믿고 따르던 하나님 역시도 한 생명을 지우는 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24주를 넘어 어느덧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그 영혼을 품어줄 틈도 없이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생과 사를 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생명력이 생겨서 엄마와 함께 아이는 집으로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호흡기를 포함한 많은 장치들을 한가득 달고 나왔습니다.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누군가가 항상 아이 곁에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의 엄마와 이제 막 할머니가 된 어머니 역시도 아픈 아이 옆에 번갈아 가면서 항시 대기하며 아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흐르면서 그 고생과 고통이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피곤이 누적되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마찰이 생기고 힘들기 때문에 감정은 빗발치고 상처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받은 가장 큰 상처는 왜 괜히 힘든 선택을 했느냐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더 쉬운 길이 있는데, 그 누구도 정죄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를 키우기로 한 건 존중하지만, 왜 그랬냐는 질문들. 특히나 너무나도 존경하던 교회의 한 목회자님의 문자가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축복한다는 말. 이 모든 것이 마치 자기가 선택해서 얻은 결과라는 그런 시선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다른 아기 엄마들은 행복하게 아기 옷을 고르고, 나들이를 다니며, 사진도 찍고. 가장 힘든 것이라곤 새벽에 일어나서 우는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달래주는 것일 텐데, 왜 나는 이런 거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선택한 건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데 왜 그 고생의 책임을 나의 어깨에 짊어지게 하는 건지. 밤새 아이를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들은 어디에 뿌려지고 있는 것이었는지.  

선택의 연속이라고도 하는 삶인데, 사실 이건 선택을 강요받은 것이 아닌지, 그 억울함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하지만 그 가운데 영롱하게 빛나는 어린아이의 눈동자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비치고 있다고 합니다. 강요받은 선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상황 앞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그 맑은 영혼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고 계시다는 것을. 가끔은 감히 하나님께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됩니다. 아직은 하나님 품에 온전히 안기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해서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너의 모습을 너무나도 축복한다고. 그 끝날에 영원히 함께 하자고, 건강한 아이와 함께 영원히.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