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말 마지막이다. 너를 만날 때마다 수 없이 되뇌었지만 난 또 그렇게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익숙한 듯 어딘가 불편한 아파트의 승강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도 발걸음을 돌려 집에 갈까 생각했어. 집에서 무한도전이나 볼 걸 후회했지만 이제는 정말 끝을 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는 마음에 홀린 듯 그 복도를 걸을 힘이 있었던 거야.
이전에 너희 부모님을 뵈러 왔을 때에는 어서 일어나서 딸기라도 씻으라고 부담을 주었던 게 생각나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 하지 않더라. 앉아 있으라는 너의 어머님의 말씀이 진심인지 빈말인지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어.
율무차 한 잔, 낑낑거리는 강아지. 정적 속에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눈앞에 놓인 돈다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막상 눈앞에 돈다발이 놓이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더라. 오천만원 정도라고 하셨던가? 사실 그 옆에 놓인 프라다 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 짧은 순간, 화는 치밀어 올라왔고 억울함에 눈물까지 맺히는 것을 참느라 고생했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행히 집을 빠르게 빠져 나왔었지.
그간 너에게 느낀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남았었다면 네가 보인 그 눈물로 다 씻어버릴게. 정말 쪽팔렸다는 너의 그 말만큼은 진심으로 느껴졌으니. 너와 싸웠던 그 수많은 시간들, 섭섭했거나 서러웠던 순간들. 한참을 싸우고 돌연 떠난 후 차 사고가 났으니 데리러 와달라고 한 너의 그 뻔뻔함까지도 이제는 다 잊을게.
일 년? 이 년 전인가, 이제? 상견례를 마치고 엄마가 잠시 한강을 가자고 하시더라. 아빠도 묵묵히 운전만 하셨는데 기분이 묘했어. 그 날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결혼을 반대하셨을 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 무슨 권위로, 무슨 생각으로 나의 삶에 이런 참견을 하시는 거였는지. 부모님이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 역시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필요했던 순간이었나 싶어.
관계 회복이 아니었어도 한 편으로 감사하네. 정을 딱 끊어주신 너의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잘 지내든 말든 이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하나의 긴 악몽이라 생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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