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1, 2016

"인생의 목마름을 채우시는 영원한 생수" - 켄 가이어의 [내 영혼의 구세주]

   이름 없는 사마리아 여인과 온 세상의 구주 위로 팔레스타인의 태양이 똑같이 이글거리고 있다. 여정에 지치신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 멈추어 쉬신다. 그녀 역시 우몰로 나와 자신도 모르게 운명과의 약속을 지킨다. 그녀를 만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4:4) 하시는 이유다.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얇은 열기의 막을 뚫고 그녀가 온다. 그녀도 지쳐있다. 머리에 인 물동이 때문이 아니라 가슴에 품은 공허함 때문이다. 지난날의 알곡은 다 어디로 가고 텅 빈 껍데기만 남았다. 한때 그녀의 삶에 급류처럼 흐르던 열정도 이제는 다 쇠진해 버렸다. 그녀는 풍상에 시달려 몸이 축났고, 신산한 삶으로 얼굴에도 잔 이랑이 패였다.
 
   그녀가 하루 중 가장 더운 때인 정오에 우물에 오는 것은 그만큼 그녀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은 더 서늘하고 쾌적한, 동틀 녘에 온다. 와서 물만 긷는 게 아니다. 베일을 벗고 잠시나마 남존여비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와서 떠들고 웃으며 친교를 나눈다. 오가는 험담 중에는 이 여인과 관계된 것도 많다. 이렇게 동네 아낙들에게 배척당했기에, 그녀는 자신을 비웃는 뙤약볕에 의연하게 맞선다. 점잖은 부류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만 있다면 못 할 게 없다.
   남편 다섯 명을 거치는 동안 그녀는 쭉 이 우물에 왔다. 늘 정오였고, 늘 혼자였다. 친구라고는 없다. 지나온 인생길을 돌아볼 때 밀려오는 건 허무와 자책감뿐이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여러 갈림길을 떠올려 본다. 다른 길로 갔더라면 행복했을까? 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이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이 관계는 전혀 장래성이 없다. 그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그가 필요하다. 그의 존재는 외로운 밤을 채워 준다. 아무리 얄팍하고 밋밋할지언정 그나마 말 상대가 되어 준다.
   그동안 그녀는 광야에서 길을 잃고 일사병에 걸려 정신 착란을 일으킨 사람처럼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했다. 그녀에게 결혼은 늘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았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우물을 자꾸만 다시 찾아갔다. 거기서 뭔가를 길어 올려 사랑과 행복의 갈증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매번 실망한 채 우물을 떠나야 했다.
 
   이날도 그녀는 그런 생각에 짓눌려 야곱의 우물에 나온다. 빈 물동이는 그녀의 삶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구세주는 그녀의 내면에 굉음처럼 울리는 아픔을 보신다. 구세주 자신이 채워 주시지 않는 한 영영 비어 있을 그 영혼의 텅 빈 우물을 보신다. 그녀의 눈빛을 웅시하시며 애정으로 과거를 꿰뚫어 보신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모든 열정과 그 열정이 다 타 버리고 남은 모든 실패를 보신다.
   그런데 인생에 실패한 이 무명의 여인에게 구세주는 예배라는 주제에 관해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따라서 예배란 육신이 어떤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의 영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인생을 다분히 영의 세계가 아니라 육의 세계에서 살아온 여인에게 주시는 따끔한 계시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도 똑같이 놀랍다. 그분은 이 여인의 결혼 편력을 언급하시면서도 죄를 명시하지 않으신다. 회개를 촉구하거나 틀에 짜인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으신다. 기도해 주겠다는 말씀도 없으시다.
   다만 예수님은 그녀를 성읍에서 이끌어 내셔서 조용한 우물가로 데려오신다. 거기서 그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신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사리며 더 다가가지 못하고 신학의 뒷골목으로 숨으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네가 말하는 내가 그(메시아)”(4:26) 하시며 그녀를 도로 데려와, 선물을 주시는 분과 그분이 주시는 생수라는 놀라운 선물을 똑바로 보게 하신다. 이것은 일을 해서 버는 대가가 아니다. 타 내야 할 상이 아니다.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 선물이다.
 
   이 낯선 사람은 그녀에게 처음엔 그냥 유대인이었다가 선생을 거쳐 선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그리스도이신 그분의 실체를 본다.
   구세주와 함께한 친밀한 순간에 그것을 깨달은 여인은 동네에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린다. 이웃으로 살면서도 자신을 배척했던 그 사람들에게 말이다. 뒤에는 빈 물동이가 모래땅에 남겨져 있다. 이제 그녀의 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져 있다.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생수를 품고 그녀는 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달리다가 점점 다리에 새 힘이 솟아 전속력으로 달린다.
 
"인생의 목마름을 채우시는 영원한 생수켄 가이어의 [내 영혼의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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