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0, 2018

대나무숲 혼잣말

시큼한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 봄의 시작 즈음이었다. 많은 고민들 가운데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담대하게 새로 다닐 교회를 여기저기 찾아보고 있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다 할 친구도 주변에 없었던 시기였고 많은 변화가 오가는 인생의 시점이었는지 의지할 곳도 하나 없던 기분이었다. 게다가 군인은 아니어도 군 복무를 먼 곳에서 수행하고 있던 시기라 어딘가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 역시 떨쳐지지 않았다. 

몇 달 동안 그렇게 교회를 옮겨 다니다 한 지인의 추천에 따라 오후 늦은 시간 한 예배에 가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오전 시간은 좋아하던 농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때라 여유 있게 갈 수 있던 그 시간의 예배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그 교회의 마지막 예배여서 그랬는지 사람도 많이 없고, 한적하지만 깔끔한 교회의 모습이 마음에 편안함을 심어주었다. 

새로운 곳을 가면 언제나 그렇듯 최대한 예의 바르고 조심스레 행동하였기에 몇 주는 예배만 조용히 다녀가곤 했었다. 모자도 푹 눌러 쓴 채. 그렇지만 목사님의 설교로부터 느껴지는 진심과 교회 사람들의 알게 모르게 느껴지던 따뜻함 덕분이었는지,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받았던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레 공동체에 스며들었다. 예배당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식당으로까지 활동 영역이 넓혀졌고 그렇게 처음으로 그분을 보게 되었다. 


새로 찾은 교회에서는 주님만 바라보며 예배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굳게 잡고 왔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건지 내 의지가 그냥 약했던 건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분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가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각별히 신경 쓰고. 옷도 늘 신경 쓴듯 이쁘게 입으시고,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밝게 대하는, 웃을 때 눈이 완전히 찡그려지는 것까지 너무나도 귀여워 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던 내가 바래왔던 그 어떤 동반자의 모습인 마냥 마음이 조금씩 요동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진 건지 그저 소심해진 건지, 그녀에게 선뜻 말을 거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매주 바삐 일을 하고 계셨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오갔으며, 넓은 공간에서도 홀로 조명을 받듯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갈 공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의 한심함을 가리기 위한 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늘 어려움을 겪었던 나였기에 무엇 하나 쉽게 할 마음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서로 갖게 되어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한 사람과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나의 바람과 욕심이 너무 커서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을 닫고 정처 없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나 홀로 마음을 정하고 닫는 과정 중에 상대방은 마음을 막 열기 시작했던 때여서 그랬는지 참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다. 


차라리 내가 바람둥이여서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겼다면 찝찝한 마음이라도 없을 텐데 교회라는 온실 속에 안전하게 자라와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굳어져 갔다.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상처를 줄 일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너무나도 다가가고 싶어서 그랬는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친해지고 싶다는 이름 하에 한두 사람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봤고 그 얘기가 와전되어 전해졌는지 그녀에게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몇 주는 솔직히 많이 억울했다. 인사조차 나눈 적이 없는데 그런 사람을 단순히 이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외모지상주의적 사람으로 인식된 것 같아서 답답했다. 솔직히 5분만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도 마음이 어디로 갈지 전혀 모르는 일 아니던가. 


그렇게 매주 마음은 정신없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집중을 흩트려 놓았다. 주일이 되면 잠시라도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또다시 반해 한마디도 걸어보지 못한 괴로움에 월요일과 화요일이 지나갔다. 그렇게 수요일을 지나 목요일이 되면 한심한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 담담하게 나 갈 길을 가겠노라 다짐하며 금요일이 되어 집에 돌아가곤 했다.


이런 마음이 계속되는 시간 속에 마음은 참으로 괴로웠나 싶었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글을 쓰고 있을까. 이 모든 심정이 너무나도 우습고 한심했다. 말도 걸어보지 못했으면서 뭐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읽었던 여우와 신 포도의 이야기가 마음을 계속해서 맴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신 포도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짧은 대화 한번 하면 이 마음의 답답함이 씻은 듯이 나아질 텐데 이제는 왠지 집착하는 듯 괴상한 사람의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매주 마음을 접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이지만 주말이 다가오면 어떤 말로 그녀에게 다가갈지 수백 번 재생하고 있을 뿐이다.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교회는 언제부터 다녔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들을 허락하셨는지. 무엇이 기쁨을 주고 무엇이 마음을 어렵게 하는지.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는 진절머리가 난다. 마치 연애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어서 어떻게 해서든 연애에 도달하려는 사람 취급받는 것이 너무나도 싫기 때문이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들만 나눠보고 싶다. 거기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이 관계의 시작을 막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은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애와 결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께 집중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하고 있다 하여 선물을 주듯 만남을 허락하시는 그런 계약적인 분은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분의 계획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나는 누굴 만나 어떤 가정을 꾸리게 될지. 아니, 결혼은 할 수 있긴 할지. 혹 바울처럼 홀로 선교의 십자가를 지고 걷게 될지. 


그런 수많은 생각 가운데 다시금 나 머릿속에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온다. 목동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녔던 어린아이 때의 모습들과, 울면서 미국 학교의 첫 수업을 마쳤던 기억, 정신없이 흘러간 중학교의 시간들, 앞날의 걱정이 가득했던 대학생 시절과 힘들다 지쳐 하나님만 붙들려고 했던 의대의 시간들. 


그 시간들 가운데 형성된 나라는 사람의 모습과 생각들. 예전부터 꿈꿔왔던 삶의 모습. 그런 이야기들은 전해주고 싶다. 서로의 삶 가운데 조그마한 접합점에 작은 씨앗 하나 심어 천천히 자라나 무성해지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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