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21, 2025

대한민국 의료의 조각

[1]
신설 병원이라 전공의를 아직 받을 수 없지만, 타원에서 가정의학과 파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본원에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과정 중에 있어서 그런지 너무나도 많은 일이 너무나도 적은 인원에게 맡겨졌다. 특히 내과 당직을 설 때에는 중환자실을 제외한 그 모든 병원의 내과 환자들을 혼자서 봐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이제 막 1년 차가 된 가정의학과 전공의가 병원의 모든 내과 환자 콜을 받는다는 것이. 같이 당직을 서는 교수님이 매일 있긴 했지만, 전화를 하면 왜 본인이게 전화를 했냐면서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안 그래도 바빠서 한숨도 못 자는 당직인데, 병동에서 잠시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뻔히 바쁜 것을 알면서도 오라 한 것은 결코 흔하지 않았기에 툴툴거리면서 병동을 향해보니 복도에서부터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암환자가 퇴원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것이었다. 담당 교수님이 전화를 하도 안 받아서, 나한테까지 연락이 온 것이었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으랴. 환자에게 오늘 밤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그냥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 아침에 교수님 얼굴 한번 뵙고 퇴원하라고 했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아내분에게 화살이 돌아가서 마치 때리는 양 주먹을 드는 것을 보고, 내가 그 가운데로 들어가서 막아서니 나한테 삿대질과 욕을 하기 시작했다. 보안 직원이 와서 제지를 해보려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 같아 보였다. 물론 다음날 혼난 건 나였다. 본인 환자를 왜 해코지했냐며.

그런데 이런 일이 특별한 일이 결코 아니다. 자세히 설명을 다 했는데도, 비싼 검사들을 왜 했냐며 환불하라고 생떼 부리는 환자. 병원이 호텔인양 심부름 시키려는 환자. 밥이 맛이 없다고 나한테 식판을 던진 환자도 있었다. 보호자들이 진상짓을 부리는 것까지 말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2]
평판이 영 좋지 않은 병원에 그래도 일을 한번 시작해 보려는 마음을 먹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면접은 정말 가관이었던 게, 대표원장이 나를 앉혀놓고 줄담배를 피면서 면접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을 하더니 마음에 든다며 내일부터 일하라고 하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 적응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특정 지역에서 일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였다. 친절히 설명해도 본인이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할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혈당이 800이 넘었는데도 입원하지 않겠다더라.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그러면 죽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병원을 떠났다. 이런 일이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로 자주 일어났다.

그러던 중 한 환자가 피검사를 할 때가 되어 검사를 안내하니 버럭 화를 내면서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검사받을 것을 권한다고 딱 두 번 말했는데 그렇게까지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알겠으니 다음 내원 시 검사를 받으라 하곤 약을 짧게 처방해 주니, 왜 또 짧게 처방하느냐며 다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 보건소 민원을 받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니 고소를 당했다는 말을 근처 경찰서에서 알려주었다.

좋게 해결하기 위해 삼자대면을 하니, 그제야 본인이 술을 마셨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본인은 잘못한 게 없는 마냥 사과를 강요하고 목을 꽃꽂이 세운채 말을 이어갔다. 법대로 끝까지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맞고소를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있는 수많은 변호사 지인들은 전부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냥 사과하고 넘기라고 하더라.

참고로 다니던 병원은 세금 문제를 하도 일으키고 있어서 퇴사하기로 했는데, 고소당했다는 것을 퇴사 한 시간을 남겨놓고 알게 된 것이라 법적 도움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평판은 역시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3]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한 미용 의원을 인수했다고 알려주었다. 일손이 부족한데 와서 일해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미용 진료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수준이었는데, 잘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토닝 레이저, 제모 레이저, 보톡스 주사. 리프팅 시술도 몇 배우긴 했지만, 한 번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아 조금 천천히 배우고 싶다고 말하여 배운 것들로만 몇주를 보내기로 했다. 

미용 진료는 정말 신세계를 맛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 게다가 많은 돈이 오가니 월급 역시도 넉넉히 주는 게 아닌가. 또 일반 진료를 볼 때에는 하루에 100명 정도는 봐야 되는 것이, 미용은 하루에 20명 정도만 봐도 같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보다, 내 마음에 가장 큰 경종을 울렸던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제모 시술을 진행했는데도 환자, 아니 고객님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주었던 것이었다. 원장님, 원장님 하면서 웃는 환자들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인가 보다. 너무나도 명백한 문제가 있다. 정치인들이 모를 수 없는 일인데도 해결할 의지는 결코 없어 보인다. 지독한 포퓰리즘에 따른 정책들인데, 그 대중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길을 한없이 걸어가다 보면 결국 의료의 질은 바닥을 치게 될 것인데, 그 어느 누구도 그 말을 하여 개선할 의지는 없다. 투표를 잃을 것을 생각하여 결코 나서진 않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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