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2, 2017

그녀의 한 마디

"안 좋아할 수 있으면 안 좋아해봐."

무뎌있던 그의 가슴은 이른 가을바람을 타고 다가온 그녀의 한 마디에 설레이기 시작했다.

쉬는 날이면 집에만 있는 것에 익숙한 그는 왠일인지 그녀의 초청에 쉽게 응했다. 긴 연휴기간 동안 혼자 남게 되어 그랬는지, 혹은 그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그런건지 그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식사 후에 찾아간 덕수궁은 참으로 평안했다. 오랜 역사의 흔적 속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그 특유의 분위기는 걷고 있는 사람들마다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듯한 풍경이었고, 사이사이에 밝은 빛을 발하던 전시물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 오늘이 마치 특별한 날이라도 된 것처럼 기억에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덕수궁을 나왔어도 그 돌담길을 거닐다 보니 둘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걸었다. 도로와 도로를 지나 이화고등학교가 보일 무렵 공원들을 걷다보니 도심 속의 발코니를 만나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지 어린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조용한 공원이었다. 

그렇게 둘은 계단에 함께 앉아 그 넓은 공간 속에 작은 안식처를 만들었고, 가끔 조용히 계단 옆쪽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은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서로의 이야기 가운데 그녀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전하고 있었다. 애정하는 곳, 애정하는 음악, 애정하는 그녀의 삶이라는 시간을 나눠주었다는 생각에 그는 점차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낯선듯 익숙한 풍경 속에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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